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이용악은 1930년대를 풍미한 모더니즘의 세례 속에서 출발했으면서도 암울한 당대의 상황에 나름대로 응전하며 독특한 시 세계를 일군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을 수 있다. 개인적인 전망이 좌절된 데 따른 유폐된 자아와 그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내면 의식 탐구로 요약되는 초기 시의 모더니즘적 요소들은 1937년 상재한 첫 시집 ≪분수령(分水嶺)≫에 이르러 자취를 감춘다. 실질적인 이용악 시 세계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분수령≫에는 법이나 언어의 기교 그리고 세련성 차원에서의 모더니즘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 1930년대 후반부터 민족 최대의 수난이라 할 대규모로 발생한 유이민(流移民)과 그 현장인 북방의 비극적 현실을 담은 서사를 시에 도입하는 방식으로 뚜렷한 문학적 성취를 이룩하기 시작한다.
이용악이 주목한 것은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극심해진 일제의 수탈과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유이민 문제였다. 그는 일제 식민 치하라는 비극적인 시대상을 인식하고 날로 심해져 가는 일제 말의 극심한 수탈과 이로 인한 민중의 처참한 삶, 그리고 이에 뒤따라 발생한 대규모 유이민 문제가 펼쳐진 북방을 깊이 있게 통찰하고 이를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시에 담아낸 것이다. 그는 북방을 배경으로 고대의 영화로운 거대 서사 복원을 꿈꾸거나 북방을 시원의 이상 공간으로 그리는 것이 아닌, 고통 받고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유이민의 삶을 구체적이면서도 담담한 목소리로 형상화했다. 그의 목소리는 분노하거나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일정한 거리감을 확보함으로써 더 큰 울림을 이루어 내는 시적 성취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같이 유이민이 가장 대규모로 일어난 비극의 현장인 북방을 배경으로 당대의 핵심적인 문제를 짚어 내고 통찰한 역사의식과 문학적 성취는 이용악 시 세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용악의 시편에 나타나는 북방은 당대의 비극과 이로 인해 발생한 유이민의 비극적인 현실과 대체로 일치한다. 이 공간은 생활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나들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 북방민들의 비극적 가족사가 서린 시름 많은 가난과 불모의 땅일 뿐만 아니라, 대규모 유이민이 펼쳐진 슬픈 민족사의 현장이다. 그리고 해방을 맞아 귀향한 뒤에도 끝나지 않는 모순과 비극을 잉태하는 무고한 고난이 수백 년에 걸쳐 반복되는 역사적 굴레를 쓴 곳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용악의 시는 궁핍하고 비극적인 개인과 비극의 현장인 유배지로서의 고향, 북방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해 개인과 가족의 비극에서 동시대 이웃과 민족의 비극으로 확장되는 비극의 현장 북방, 그리고 해방 후에도 계속되는 비극을 잉태한 북방과 모순 가득한 민족의 현실에 대한 인식의 단계로 확대되고 이행하는 과정을 보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용악의 선택은 이념과 현실 참여의 길이다. ‘조선문학가동맹’의 가담과 남로당에 가입했고, ‘남로당 서울시 문련 예술과 사건’으로 검거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어 복역 중이던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의 서울 점령 때 풀려 나와 고향인 북을 선택한 것이다. 이후 남긴 일련의 시들은 생경한 이데올로기가 앞선, 그럼으로써 이전의 그가 보인 시적 특징을 살리지 못하거나 문학적 성취에는 미치지 못한 것으로 귀결된다.
1930년대 유이민의 비극과 민중의 비참한 삶을 시적 대상으로 삼고 형상화한 이용악의 시 세계는 1920년대 카프 진영의 작가들과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참혹하고 비극적인 민중들의 삶을 관념이나 구호에 경사되지 않고 쉽고 구체적인 일상어와 토속어로 그려 냄으로써 호소력과 공감을 끌어내었다. 이 점은 앞선 세대인 카프 시인들이 수없이 시도했으나 도달하지 못한 실패를 딛고 이룩한 민중의 서사성과 서정성의 성취라는 점에서, 값진 것이자 1930년 후반 시문학의 전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이용악의 시적 성취는 리얼리즘이나 모더니즘, 어느 한쪽을 편수용한 결과가 아니라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균형 있는 수용과 조화에 기초를 둠으로써 이룩한 값진 성과다.
200자평
이용악은 일제 식민 치하라는 비극적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1930년대 북방 유이민의 참혹한 실상을 담은 서사를 시에 도입한다. 자신이 나고 자란 북방에 줄곧 눈을 떼지 않으며, 이를 핍진하게 ‘생활의 노래’로 승화함으로써 근대 시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당대의 핵심적인 문제를 짚어 내며 맞서는 그의 시 세계와 문학적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지은이
이용악(李庸岳, 1914∼1971)
이용악은 아버지의 객사 후에는 어머니가 꾸린 궁핍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1928년 함북 부령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농업학교에 입학했으나 19세에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같은 해 일본 히로시마의 고분(興文)중학교 4학년으로 편입해 1933년에 졸업했고 이어 니혼(日本)대학 예술학과 1학년을 수료했다. 그 후 약 2년 동안 생활고를 겪으며 막노동에 종사했다. 1936년 4월부터 1939년 3월까지 일본 조치(上智)대학 신문학과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도 막노동을 병행해야 했으며, 방학이면 돌아와 고향의 문인들과 어울리곤 했다.
문학에 꿈을 품은 그는 1935년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유학지인 도쿄에서 동향(함북 명천)의 시인 김종한(金鍾漢, 1916∼1944)과 함께 동인지 ≪이인(二人)≫을 5∼6회 발행했으며, 형 송산(松山)과 동생 용해(庸海)와 함께 삼형제가 시를 썼다. 도쿄의 산분샤(三文社)에서 두 권의 시집 ≪분수령≫(1937)과 ≪낡은 집≫(1938)을 잇따라 펴냄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1940년대 초반에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며 서정주·오장환과 더불어 “문단의 삼재(三才)”로 꼽힐 정도로 문단 중심에 진입했다. 1939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최재서(崔載瑞)가 주관한 당대의 문예지 ≪인문평론≫에 기자로 몸담았으나 생활은 여전히 밑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41년 ≪인문평론≫이 폐간된 후 귀향해 한동안 함북 지역의 유일한 신문이자 일본어 신문인 ≪청진일보(淸津日報)≫의 기자 생활과 주을(朱乙) 면사무소 서기 생활을 했으며, 문필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하기도 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급거 서울로 돌아와 ‘조선문화건설본부’에 참여하는 한편 11월경부터 약 1년간 당시의 대표적 좌익지인 ≪중앙신문≫의 기자로 근무했다. 이듬해 2월 8일 결성된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해서 활동했으며 이 단체가 개최한 ‘전국문학자대회’에 참석하고 <전국문학자대회(全國文學者大會) 인상기(印象記)>를 썼다. 1947년에 세 번째 시집 ≪오랑캐꽃≫을 아문각(雅文閣)에서, 1949년에 네 번째 시집 ≪이용악집(李庸岳集)≫을 동지사(同志社)에서 각각 상재했다. 1947년 남로당에 입당했으며 이후 월북 시인인 배호(裵澔)와 함께 ‘조선문화단체총연맹’ 서울시지부 예술과의 핵심 요원으로 선전·선동 활동에 종사했다. 1949년 8월 ‘남로당 서울시 문련 예술과 사건’으로 검거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복역하다가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의 서울 점령 때 풀려 나와 고향인 북을 선택했다. 1953년 임화 등 남로당계 인사들이 숙청당할 때 “공산주의를 말로만 신봉하고 월북한 문화인”으로 지목되어 한동안 집필을 금지당했다. 이후 <평남관개시초(平南灌漑詩抄)> 제작(1956)과 ≪역대악부시가≫를 번역하고 발간하는 데 참여했고, 1971년 58세에 지병인 폐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엮은이
곽효환
곽효환(郭孝桓)은 1967년 전북 전주에서 나서 서울에서 자랐다. 건국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했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6년 ≪세계일보≫에 <벽화 속의 고양이 3>을, 2002년 ≪시평≫에 <수락산> 외 5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서울국제문학포럼, 동아시아문학포럼 등의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시 창작과 연구를 하며 고려대·경기대 등에 출강하고 있고, ≪대산문화≫ 주간과 ≪문학나무≫·≪우리문화≫ 편집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인디오 여인≫(2006)·≪지도에 없는 집≫(2010), 시론집 ≪한국 근대 시의 북방 의식≫(2008), 편저 ≪아버지, 그리운 당신≫(2009)·≪구보 박태원의 시와 시론≫(2011) 등을 비롯해 여러 권의 공동 시집, 공저, 편저, 논문이 있다.
차례
分水嶺
北
나를 만나거던
도망하는 밤
풀버렛소리 가득 차 잇섯다
葡萄園
國境
冬眠하는 昆蟲의 노래
天痴의 江아
길손의 봄
제비 갓흔 少女야
晩秋
雙頭馬車
낡은 집
검은 구름이 모혀든다
너는 피를 토하는 슬푼 동무였다
아이야 돌다리 위로 가자
그래도 남으로만 달린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
고향아 꽃은 피지 못했다
낡은 집
오랑캐꽃
오랑캐꽃
불
노래 끝나면
집
꽃가루 속에
달 있는 제사
강ㅅ가
다리 우에서
버드나무
벽을 향하면
길
무자리와 꽃
다시 항구에 와서
절라도 가시내
두메산곬(1)
두메산곬(2)
두메산곬(3)
두메산곬(4)
슬픈 사람들끼리
뒷ㅅ길로 가자
항구에서
李庸岳集
오월에의 노래
노한 눈들
우리의 거리
하나씩의 별
그리움
하늘만 곱구나
나라에 슬픔 있을 때
거리에서
막차 갈 때마다
등잔 밑
시골 사람의 노래
집
빗발 속에서
유정에게
리용악 시선집
어선 민청호
석탄
욕된 나날
연풍 저수지
두 강물을 한 곬으로
시집 미수록 작품
敗北者의 所願
北國의 가을
슬픈 일 많으면
눈 나리는 거리에서
機關區에서
다시 오월에의 노래
듬보비쨔
영예 군인 공장촌에서
빛나는 한나절
봄의 속삭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1.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었것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 메투리도 몰으는 오랑캐꽃
두 팔로 해ㅅ빛을 막아 줄께
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오랑캐꽃> 중에서
2.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女人이 팔녀 간 나라
머언 山脈에 바람이 얼어붓틀 때
다시 풀릴 대
시름 만흔 북쪽 하눌에
마음은 눈 감을 줄 몰으다
–<北쪽> 중에서